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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2009/12/11 16:18
쾌도난마 한국경제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장하준 (부키,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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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서&리뷰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약 3개월이 흘렀다. 권수로는 24권 정도이니 날짜에 비하면 그리 많다고 할 수는 없는 양이다. 하지만 돌이켜 봤을 때 이 3개월간 읽은 책들은 그간 나의 독서력(?)에서 가장 특이한 부분으로 남을 듯 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근 3개월간 읽은 책들의 성격이 이전 30여년(!) 동안 읽어 온 책들과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좋아하는 것, 관심있는 분야의 책들만 읽고 취향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영역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달까? 그러니 최근 읽은 책들은 상당히 특이한 경험이라고 하겠는데 이 '쾌도난마 한국경제' 역시 그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하겠다.

한 사람의 사회자와 두 사람의 패널, 세 사람의 좌담 형식으로 진행되는 책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신자유주의'이다. '신자유주의'는 현 세계 경제를 상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용어일 텐데, 그 개념에 대한 혼동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혼란과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 역시 언론을 통해 피상적으로 접했을 뿐,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에 대해 명확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저 막연히 단어가 가지고 있는 함의를 떠올려 가며 혹은 신문기사나 칼럼 등에서 얻은 얕은 지식으로 신자유주의를 멋대로 조립했을 뿐이다.

책의 전반부는 과거를 조망하는 내용으로, 후반부는 미래를 전망하고 현재를 대처하는 자세에 대해 채워져 있다.

경제를 다루면서 과거를 볼 때, 우리는 항상 떨칠 수 없는 망령과 마주하게 된다. 박정희라는 이름의 이 망령은 그 실체보다 몇 배나 큰 아우라를 뿌리고 있어 똑바로 보기가 어렵다. 박정희에 관한 글들은 많았지만 대부분 감정에 치우쳐, 혹은 공과 과를 혼동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더 큰 의문을 품게 만들기 일쑤였다. 대체적으로 공을 논하는 자는 과를 묻으려 하고, 과를 논하는 자는 공을 깎아내리려 한달까? 그러나 이 책에서, 장하준과 정승일이라는 두 사람의 경제학자는 박정희라는 망령의 실체에 대해 가감없이 이야기하려 하고 있다(물론 내가 문외한이라서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객관적이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확실히 보인다). 내가 박정희에 관해 품었던 가장 큰 오해는, 그가 반공을 부르짖었다 하여 그의 경제정책조차 서구 자본주의에 입각했다는 점이다. 또한 그의 업적이 상당 부분 노동자들을 쥐어짜 이뤄낸 것들이니 그런 부분에서 평가절하가 필요하다는 것이 기존의 내 짧은 견해였는데 저자들의 깔끔한 정리로 그러한 오해를 풀 수 있었다. 물론 그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고울 수 없지만, 적어도 경제에 관해서는.. 노동자의 희생 없이 경제 발전을 이룩한 사례가 없다는 것은 충분히 감안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나라의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막연하나마 평소 품어왔던 생각과 크게 반하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러나 의외였던 것은 노동조합이 강한 나라(여기서는 주로 스웨덴을 예로 든다)의 경제가 세계적으로 탄탄하다는 것이었는데, 최근 우리나라의 상황을 떠올려 보면 우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시장과 자본, 대중에 전적으로 맡겨 놓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수많은 사례를 통해 알고 있는데, 아직도 그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공기업들을 민영화하고 국가를 기업 다루듯 하는 누군가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후반부를 읽으면서 문득 울티마 온라인을 떠올렸다. 유저에게 주어진 너무나 큰 자유를 기반으로 수많은 창의성이 발현되어 화제가 됐던, 그래서 한 번도 플레이해보지 않았던 나도 동경해 마지않았던 울티마 온라인. 그러나 그 무제한에 가까운 자유가 결국은 유저들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곱씹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는 인간이 이룬 생활양태의 본질적인 부분과 맞닿아 있을 텐데, 인간이 자유로이 살 수 있다면 지금처럼 무리를 이루고 사회를 만들어 살아갈 필요가 있었을까? 어쩌면 군집생활이라는 이 생활 양식이, 무한한 자유가 주어졌을 때 공멸하고 마는 인간의 한계를 일찌감치 역설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이 나온 당시는 노무현 정부 시절로, 공도 많았지만 경제적으로 과도 많았던 때다. 나도 고인을 좋아했지만 과는 과라고 말할 수 있어야지. 하지만 그 대안으로 택하여진 지금 정부를 생각하니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특히나 최근 흐지부지된 철도 노조 파업이 책 속의 노동 운동 부분과 겹치면서, 4년이 흘렀지만 변한 게 없고 오히려 더 뒷걸음질친 것은 아닌지 걱정만 된다.
Posted by 김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