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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노무현 전대통령의 못 다 쓴 회고록이라는 표지의 문구처럼 이 책은 미완성인 채로 세상에 나왔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미완성이었기에 나올 수 있었던 책인지도 모른다. 살아있었더라면. 그랬다면 그는 여전히 언론과 정적들에 의해 짓밟히고 매도당하며 한 권의 책도 마음대로 낼 수 없는 처지였을 테니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잠시 기억을 더듬어 봤다.
돌이켜보면 참 순진하게도, 나는 노무현의 당선을 확신하고 있었다. 정몽준과의 후보 단일화 이후에도 한나라당과 이회창은 그리 막강했건만, 나는 어떠한 열기 속에서 이것이 결코 막거나 돌릴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라고 생각했었다. 우스갯 소리로 '2002년은 역전승의 해였으니 마무리도 멋지게 역전으로 끝낼 것이다' 라는 글을 모 스포츠 커뮤니티에 올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물론 그 해의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의 결과가 한 해에 일어나기 어려운 게 맞기는 했다. 이탈리아를 2-1로 역전하고 그 기세를 몰아 월드컵 4강에 올랐던 그 해, 삼성은 그토록 염원하던 한국시리즈 타이틀을 손에 넣었으니까 말이다. 그것도 9회말 3점 차를 역전한 백투백 홈런으로.
아직까지도 나는 노무현의 당선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이 월드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축구 경기에서 이겼기 때문이라는 말은 아니다. 정확히는 월드컵을 계기로 피어난 거리 응원 문화를 말함이다.
거리 응원이라는 현상에 대한 연구는 미칠 듯이 많이 나와 있어 여기서 굳이 그런 것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거리 응원이 단순히 규모의 차원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하나의 색, 하나의 구호 아래 연대감을 느끼고 통일감을 느꼈겠지만 그 고양감이 어느 집단(당시 언론의 고정 레퍼토리였던 민족이라든가)의 소속감에 그친 것은 아니었다. 거리 응원을 통해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시대의 한 가운데, 역사가 만들어지는 현장이며 이제껏 주변에서 객체(客體)로 머물렀던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주체(主體)가 될 수 있음을 확인했던 것이다. 그들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했든간에.
다른 사람들까지 언급할 깜냥은 안 되고, 순전히 나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면 불행하게도 앞서 말한 의식은 당시 발현했을 뿐, 가시적인 성과에 가로막혀 지속적으로 자라나지 못했던 것 같다. 바로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달콤한 결과에 취해, 혹은 그것이 시작이 아니라 결실이라는 착각을 한 순간 말이다.
그렇게 대통령을 만들었다, 노무현이라는 괜찮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결과에 만족한 순간, 나는 스스로 주체에서 다시 객체로 물러난 것이다. 내가 한 걸음 물러났을 때 노무현의 실패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가마꾼이 가마를 들어올렸다면, 그 위에 탄 사람은 당연히 가마가 앞으로 갈 것이라고 기대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기대했기 때문에 노무현은 스스로 새 시대의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희망했을 것이다. 특출난, 말하자면 몇몇 정치 '영웅'에 기대는 구시대를 벗어나 민주주의 이상에 좀 더 다가간 새 시대를 말이다.
그 기대가 무너졌을 때, 노무현은 좌절하는 대신 생각을 바꾸었다. 스스로 구시대의 마지막 사람이 되겠다고. 그 참담한 심정이, 그러면서도 희망의 끈을 붙들겠다는 의지가 바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1부의 제목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정치인으로서, 우상으로서의 노무현은 버려야 한다. 중요한 일이다. 그가 자살했기에, 하나의 아이콘화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전장이나 다름없는 선거판, 정치판에서는 그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하나 우리 시민들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그것이 메이져 언론이 만들어낸 부정적 아이콘이든,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통해 이루어진 신화적 아이콘이든. 우리 안에 거대한 우상을 치우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한 걸음 내딛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인간 노무현은 잊지 못할 것이다.

